‘명사와 함께 하는 독방 24시간’ 두 번째 이야기- (사)행복공장 권용석 이사장
행복공장은 '성찰을 통해 개개인이 행복해지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와 갈등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습니다. 매주말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이 1.5평 독방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24시간의 고요를 통해 내가 새로워지고 우리 사는 세상이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
가장 공통적인 첫 체험은 '멍때리기'이더군요. 사실 이것이야말로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방법이 아닌가요. 그리고는 밀폐된 독방 안에서 감옥 밖에서는 누릴 수 없는 자유를 만끽하게 되는 이 역설을 맛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쁜 일상에서 '시간 빈곤'에 시달리다가 문득 시간의 풍요로움을 깨닫습니다. 한 젊은 참여자는 "내가 흘려보내고 있던 순간순간이 이렇게 길게 쓰일 수 있는 시간이었는지를 새삼 느꼈다. 정말 소중하게, 의미있게 쓸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는데, 흘러간 시간들이 아까웠고, 앞으로의 시간들이 귀해졌다"고 털어놓습니다.
비단 바깥의 공기, 햇살과 자유를 일컫는 게 아니다. 신체를 옭아매고 감각을 무뎌지게 만드는 사회는 감옥과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나만 집중하는 작은 공간에 갇혀서야 나의 존재와 감각을 오롯이 느끼게 됐다. 오전 10시, 종이 울리고 문이 열렸다. 나는 세상 속으로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어제와 달리 인생의 수인囚人이 아닌 주인主人이 당당하게 걸어나가고 있었다.
줄어든 틀을 가만히 보다가, '네가 내 감옥이었니' 하는 생각에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언젠가 내가 원했을 나에게로 가는 길을 선택할 때 나는 그것을 타인의 시선으로 한정 지었다. 그들이 바라는 나는 사실 스스로에게 원하는 모습을 투영한 것이었다. 본래의 모습을 줄이기도 늘이기도 하면서 틀에 꼭 맞게끔. 그래서 스스로 하여금 그것이 나의 본 모습이라고 믿게끔.
사회생활을 경험한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으면서도, 막상 할 일이 없으면 낙오자가 된 듯 뭘 할지 모르고 다른 '일'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 생각을 정리해 보겠다며 찾아간 템플스테이마저도 정해진 일과에 따라 움직이느라 바쁘다.
핸드폰이 없어 답답하기도 하고, 뭘 해야 할지도 몰라 안절부절하며 멍 때리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어느새 저녁이 되었는지 문 아래 배식구로 식사가 들어왔다. 쉐이크랑 고구마 한 개.. 평소 저녁식사에 비해 턱없이 적다. 설마 이걸 먹고 아침까지 견디라는 것은 아니겠지 했는데, 그게 다였다.
성찰이란 무엇일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그런데 막상 와서는 죽도록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나,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인가'만 고민했다. 그러고 나니 지금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저절로 알게 되었다. 그런 것 같다. 성찰이란 기존에 없던 생각을 새롭게 해내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스스로 알고 있던 것, 그러나 내 안의 감옥에 사로잡혀 드러내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내어,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긍정하고, 다시 나의 안으로 받아들이는 과정. 문제도 내 안에 있고, 해결책도 내 안에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할까? 나에게 행복은 무엇인가?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은 어땠는가?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나는 34년간 단 한 번도 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또 하나 나에게 행복했던 기억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어렸을 적 친구들과 시덥잖은 장난을 치며 깔깔거리며 웃었던 그런 기억들이 지금의 내가 보기엔 행복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막연하게 내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과 비교해가며 '쟤보다는 내가 더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랑하는 딸! 너도 알다시피 엄마 아빠는 80년 5월에 결혼했다. 한때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아빠는 당시 복학생이었고, 엄마는 신문사 기자였지. 당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된 뒤 군부가 지배하는 계엄 상태였지만, 그래도 민주화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이 존재했었다. 언론계에서도 박정희 정권 아래서 짓눌려온 언론의 자유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벌어지고 있었지. 그러나 전두환의 쿠데타는 그 모든 희망을 완전히 짓뭉갰다. 민주화를 주창하던 사람들은 감옥으로 끌려갔고, 언론자유를 부르짖던 많은 선후배들과 함께 엄마도 강제해직됐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밟혀 나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워크북에는 '내가 지금부터 1년밖에 못 산다면 하고 싶은 일'을 적어보라는 지시문이 있는데, 나는 제주도에서 바다가 보이는 집 한 채를 얻어 부모님과 살아보고 싶다. 그런데 '꼭 죽기 전에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이번 여름에 바로 실행할 생각이다. 텔레비전과 핸드폰이 없어서일까? 다른 것에 방해 받지 않고 작은 방에 홀로 있다 보니 나에게 더 잘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